[고두현의 문화살롱] 나쓰메 소세키와 '두 개의 가을'

입력 2018-11-29 18:10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근대 하이쿠의 아버지’로 꼽히는 시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두 사람은 메이지 시대 직전인 1867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다. 서로에게 빛나는 영감을 주며 근대문학을 꽃피웠다. 둘이 처음 만난 것은 22세 때인 1889년. 제1고교(지금의 도쿄대 교양학부) 동창생인 이들은 젊은 문학도로 의기투합했다.

독특한 필명도 이 무렵에 탄생했다. 소세키는 본명인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 대신에 시키가 지어준 ‘소세키(漱石)’를 평생 필명으로 썼다. 이 이름은 중국 《진서(晉書)》의 고사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괴짜들의 언어유희를 뜻한다. 시키의 본명은 쓰네노리(常規)였으나 결핵에 걸려 각혈한 뒤 ‘울며 피를 토하는 두견새’를 의미하는 ‘시키(子規)’를 필명으로 삼았다.

하이쿠 시인과 함께 나눈 영감

두 사람의 우정은 시키가 3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같은 하숙방을 쓰거나 여행을 함께 다니며 삶과 문학을 논했고, 서로의 작품을 발표할 지면도 마련했다. 시키는 자신의 필명을 따 창간한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두견새)’에 소세키의 출세작이자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실었다. 처음에는 한 회 분량의 단편으로 기획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계속 연재했다. 두 번째 작품인 《도련님》도 그 잡지에 실어 큰 인기를 얻었다.

둘이 떨어져 있을 땐 하이쿠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웠다. 시키가 고향인 마쓰야마로 요양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소세키와 함께 지낸 뒤 헤어질 때 이런 하이쿠를 남겼다.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두 개의 가을.’ 아픈 몸을 이끌고 떠나는 사람과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 사이의 ‘두 가을’을 대비한 시였다. 이에 소세키는 ‘가을바람에/ 살아서 서로 보는/ 그대하고 나’라는 하이쿠로 희망을 북돋웠다. ‘빌려 주어서/ 내겐 우산이 없는/ 비오는 봄날’이라는 시에는 ‘봄비 내리네/ 몸을 바짝 붙이는/ 하나의 우산’이라고 화답했다.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도 하이쿠를 많이 넣었다. 소설 속 구샤미 선생의 곰보 자국처럼 소세키 역시 천연두 자국이 있었는데 이를 하이쿠에 접목했다. ‘으스름달밤/ 얼굴과 안 어울리는/ 사랑을 하네.’

한·중 근대소설 태동의 지렛대

두 사람 모두 한문에 조예가 깊어 외래 문명에서 온 낱말을 새로운 조어로 만들어냈다. 소세키가 만든 한자 조어는 신진대사(新陳代謝), 반사(反射), 무의식(無意識), 가치(價値), 전력(電力) 등 수없이 많다. 서양의 ‘로망’을 한자어 ‘낭만(浪漫·일본어 발음 로만)’으로 번역한 것도 소세키다. 시키는 야구 용어를 일본식 한자로 옮겼다. 우리가 쓰는 ‘타자’ ‘주자’ 등은 모두 그의 용어를 빌려온 것이다.

일본 근대소설의 문을 연 소세키의 문학은 20세기 노벨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에게 이어졌다.

한국과 중국에도 큰 자극을 줬다. 이광수는 일본에서 공부하며 소세키에게 매료돼 귀국한 뒤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썼고, 중국의 루쉰도 유학 이후 《광인일기》라는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을 발표했다. 올해는 《무정》과 《광인일기》가 출간된 지 100주년인 해다.

소세키의 기일인 다음달 9일을 전후해 한·중·일 3국에서 그를 기리는 문학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한 세기 전 스산한 바람 속에 ‘두 개의 가을’을 공유했던 소세키와 시키의 우정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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